미용실 가기 힘든 이웃을 찾아 예쁘게 잘라 드려요~

시민기자 강사랑

발행일 2023.04.28. 15:04

수정일 2023.04.28. 16:08

조회 1,313

[우리동네 시민영웅] 이웃과 동행하는 사랑의 가위손, 석관동 예쁜손봉사단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어르신, 고개를 살짝 내려주세요"

손에 미용 가위를 든 봉사자 김희자 씨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올해 76세가 된 김영순(가명) 할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봉사자의 손길에 머리를 맡겼다. 오랫동안 다듬지 않아서 제멋대로 자라난 머리가 봉사자의 손길 몇 번에 깔끔하게 바뀌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기 좋구먼." 거동이 편치 않아 휠체어에 탄 채로 미용 봉사를 받던 할머니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봉사자 김희자 씨가 다시 말했다. "할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건강하셔야 돼요!" 성북구 석관동 예쁜손봉사단의 미용 봉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미용 봉사를 하는 예쁜손봉사단 김희자 씨 ©강사랑
미용 봉사를 하는 예쁜손봉사단 김희자 씨 ©강사랑

지난 4월 19일, 석관동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에서 만난 예쁜손봉사단의 자원봉사자들은 하나같이 밝은 인상이었다. 여섯 명이 두 조로 나뉘어 방문 미용 봉사를 하는 날이었다.

첫 번째 팀을 따라 방문한 집은 화분 속 붉은 철쭉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주택 3층이었다. 예쁜손봉사단이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 할아버지가 반색하며 반겼다. 곧이어 휠체어에 탄 김영순(가명) 할머니가 미용을 받기 위해 햇볕이 내리쬐는 현관으로 나왔다. 봉사단 김희자 씨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오늘은 기분이 어떠신지,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다.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할머니의 머리는 한결 단정해졌다.

집에서 이렇게 방문 미용을 받는 일이 오늘로 벌써 네 번째이다. 할아버지는 미용을 마치고 떠나가는 예쁜손봉사단을 배웅하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예쁜손봉사단 김순실 단장과 김희자 봉사자 ©강사랑
예쁜손봉사단 김순실 단장과 김희자 봉사자 ©강사랑

이렇게 총 6가구를 빠짐없이 방문하며 미용 봉사를 한 예쁜손봉사단은 점심 무렵 석관동 주민센터에 모였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기에 힘들 법도 하지만, 피곤한 기색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담소를 나누는 봉사단원들 너머로 벽면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이 꽃피는 손길, 예쁜손 봉사단'이라는 글씨가 또렷하다.

이들은 어떻게 미용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일까? 예쁜손봉사 김순실 단장미용 봉사자 김희자 씨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오늘 봉사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쁜손봉사단'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A. 김순실 단장 예쁜손봉사단은 지역 봉사에 뜻이 있는 분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봉사단체예요. 봉사단원 중에는 통장도 있고, 여러 모로 지역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석관동 주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미용 봉사를 떠올리게 되었죠. 2018년 시작한 무료 미용 봉사가 올해로 벌써 6년이 되었네요.

Q. 미용을 어떤 연유로 배우게 되셨나요?
A. 김희자 봉사자 제가 서른아홉 무렵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다가 월곡동에 있는 생명의 전화에서 미용을 배웠어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발품을 팔아가며 도전했죠. 봉사하기에 이만한 일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Q. 여러 봉사활동 중에 미용 봉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A. 김희자 봉사자 언젠가 신문 기사를 봤는데, 미용 봉사를 취재한 글이었어요. 거동이 불편해서 외출을 못하는 분들을 찾아가 머리를 만져주더라고요. 그 기사를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저도 미용을 통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미용을 배웠고, 주민센터에서 봉사 단체를 구성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했죠.

Q. 미용 봉사를 받는 분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신가요?
A. 김순실 단장 석관동 주민센터 보건복지팀에서 관리하는 취약계층 가구들이 대상이에요.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몸이 불편한 장애인 분들께 미용 봉사를 하고 있어요.

Q. 오랫동안 봉사를 하셨는데, 힘들거나 어려운 순간은 없으셨나요?
A. 김순실 단장 어르신들 중에는 일어나는 것조차 힘드신 분들이 있어요. 겨우겨우 자세를 바꿔가며 미용 봉사를 할 때는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더욱 가슴이 아픈 건 따로 있어요.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미용 봉사를 해드렸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예요. '우리가 좀 더 잘해 드렸어야 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파요.
불편을 겪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머리를 정성껏 단장해 드리는 모습 ©강사랑
불편을 겪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머리를 정성껏 단장해 드리는 모습 ©강사랑

Q. 오늘 방문했던 집 중에 휠체어에 앉아 머리를 자르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A. 김순실 단장 머리가 지저분해져서 미용을 받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하니 그냥 포기하고 사시는 분들이 있어요. 미용사를 집으로 부를 수도 없어요. 위생 시설이 아닌 장소에서 미용사가 상업 행위를 하는 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봉사가 목적이고 일절 돈을 받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가 어르신들 집으로 방문해서 미용을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이런 점에서 봉사단의 활동이 무척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요.

Q. 봉사활동을 지켜보면서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큰 보람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A. 김희자 봉사자 어르신들께서 저희에게 "고맙다", "딸 같다", "나를 미남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해 주실 때 아무래도 힘도 나고 기분이 좋죠. 봉사하는 저희 단원들도 어르신들 덕분에 받는 것이 참 많아요. 도움을 드린다고 생각하고 봉사를 시작했지만, 도리어 저희가 힘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삶의 활력이 된다고나 할까요?

Q. 앞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기를 원하시나요?
A. 김순실 단장 지금처럼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미용 봉사를 하면서 비규칙적인 봉사도 이어나갈 생각이에요. 미용 봉사를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며 꾸준히 성장해 가는 봉사단이 되었으면 합니다.

Q. 봉사에 뜻이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주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A. 김순실 단장 아무런 정보 없이 봉사를 시작하려면 막막하실 거예요. 일단 구청이나 주민센터에 문의해 보시길 권해 드려요. 지자체가 운영하고 지원하는 봉사단체들이 있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인 것 같아요. 주저하지 마시고 도전해 보세요. 고민했던 시간이 머지않아 봉사활동이 주는 기쁨으로 바뀔 거예요!
이름처럼 예쁜 선행을 펼쳐 나가고 있는 석관동 예쁜손봉사단 ©강사랑
이름처럼 예쁜 선행을 펼쳐 나가고 있는 석관동 예쁜손봉사단 ©강사랑

코로나19 이후 우리 주변에는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독거 어르신 및 장애인 가정이 많다. 이런 취약계층 가구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미용 봉사와 함께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예쁜손봉사단의 존재가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

예쁜손봉사단은 지난 2018년 발대식을 한 이후로 석관동주민센터에서 무료 미용 봉사를 제공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이웃들을 위해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문 미용 봉사를 해오고 있다.

예쁜손봉사단은 봉사를 위해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할 정도로 봉사에 진심인 사람들이었다. 봉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봉사 활동의 선한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앞으로 예쁜손봉사단이 펼쳐나갈 예쁜 선행이 더욱 기대된다. 이들을 계기로 더욱 많은 사람이 주변의 이웃들에게 나눔의 손길을 더하며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시민기자 강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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